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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현재...../게임

컴퓨터와 게임에 대한 추억 #15 (1992년.. 스트리트파이터2, PC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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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GA, 애들립카드에 이어 92년 또 하나의 충격적인 일이 있었는데 PC로 스파2가 나온 것이었죠. 하이텔id wd40 정영덕님이 비디오블래스터 캡쳐보드로 슈퍼패미컴과 연결후 스파2를 캡쳐받아 만든 게임이었는데 발상도 매우 놀라웠지만 게임 퀄리티도 훌륭해 슈패판과 거의 흡사했습니다.

이 시절 스파2는 길가다 만원을 주워 혼다, 달심같은 별로 해보지 못한 비주류 캐릭을 원없이 즐겨보는 상상을 매일매일 했던 이 세상 최고의 게임.. 새벽에 신문배달을 해서 슈퍼패미컴과 스파2팩(15만원)을 구입한뒤 저희집에 가져와 같이 즐기게 해줬던 친구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던 꿈의 게임이었죠. 초딩부터 어른까지 남자라면 모두 스파2에 빠져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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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판은 이 슈패판 옵션보다 좀더 다양하게 시간, 에너지바도 조절할 수 있었죠

돈이 맨날 부족했던 탓에.. 초딩땐 엄마 책속의 만원을 몰래 빼서 친구들과 오락한적이 두 세번 있었는데 하루종일 해도 남는 빠방한 액수에 즐거웠지만 죄책감에 중딩땐 이런짓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 테니스 라켓 줄이나 자동차 와이퍼로 쑤시기, 전기충격을 주는 가스버너 딸깍이, 10원짜리에 까만테잎을 붙여서 100원으로 둔갑시키기 등의 방법으로 공짜로 즐기곤 했죠.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어느날 단골 오락실 주인아저씨한테 들켜서 방으로 잡혀갔는데 고추보여주면 용서해준다고 하더군요.. 이때 사춘기라서 제 몸의 변화가 창피하던 시절이었는데.. 이때 이후로 불법행위를 끊었을만큼 창피한 경험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주인아저씨를 굉장히 인자하고 좋은분으로 알았기에 충격이 더 컸죠. 저는 10원짜리 방법만 애용했고 다른 방법들은 제 친구들이 자주 해줬는데.. 매일 동전이 수거되는 오락실 생태상 10원은 꼬리가 밟힐 수밖에 없다는걸 당시엔 왜 몰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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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덕님은 RYU를 만들고 바로 배포를 하셨는지 처음엔 RYU밖에 없는 게임이었지만.. 컴에서 스파2가 돌아가는걸 보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켄, 블랑카, 달심 등등 캐릭터가 하나씩 추가될때마다 와 정말 대단히 기뻤는데 그러고 보면 지금 온라인 게임의 패치와 같은 확장성이 있었죠. 제 동생놈은 새 캐릭이 나올때마다 제가 카피해오라고 시키면 만원주고 카피해왔다고 삥땅을 쳐서 용돈 몇만원을 두둑히 챙겼는데... 잔망스러운 니노같은놈이죠.. 용서 못해.

이 스샷들은 전부 슈패판 스샷인데 당시 정영덕님 스파2를 보는것 같죠. PC판은 음성도 슈패판처럼 죽을때 비명이 3번씩 울리거나 목소리가 오락실과는 약간 달랐습니다. 아도겐~ 어류겐~ 그 어떤 게임보다 음성지원 체감이 대박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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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덕님 스파2는 확장성이 매우 대단해서 일반인들도 캐릭을 추가하는등의 개조를 할 수 있었는데.. 나중엔 아랑전설이나 용호의권 캐릭터가 추가되거나 오락실 개조버전같은 황당버전도 나왔죠. 테리, 김갑환이 나와서 용장풍을 쏘고.. 캐릭터마다 음성도 바꿀 수 있어서 마이크로 제 음성을 녹음해서 바꿔 넣기도 했습니다. 확장자가 voc였나.. 가물가물하네요.

알케미라는 개조툴로 캐릭터의 모션을 오락실하고 흡사하게 수정한 저만의 완벽 버전을 만들었는데.. 캐릭터의 동작이 이렇게 많았는지, 프레임을 어떤식으로 구성해야 각종 동작이 오락실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는지.. 이때 많은걸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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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댓글창의 깜빡이는 장풍 효과는 이 시절에 알게된 것이었죠. 류 장풍 모양은 두 그림이 서로 번갈아가며 바뀌는데.. 장풍이 없는 장면을 사이마다 끼워넣어 총 4프레임으로 구성해야 깜빡이는것처럼 보여집니다. 당시 장풍이 깜빡이는 버전이 없었는데 제가 오락실처럼 깜빡이도록 개조하고 나서 흐뭇해하던 생각이 나네요. 친구들이 맨날 집에 놀러와서 제가 만든 버전으로 대전을 즐기다 가곤 했는데 스파2 덕분에 정말 재밌게 놀던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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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보다 찐한 붉은색 도복이 인상적이던 켄.. 아케이드판 음악과 비교(http://samwisethebrave.tistory.com/57)

정영덕님 스파2는 이렇게 개조나 버전업 덕분인지 질리지 않고 93년까지 한 일년 반을 즐겼습니다. 1994년엔 US GOLD에서 스파2 컨버전판이 나왔는데 그래픽만 좋았죠. 그래서 이 게임의 그래픽을 따내어 정영덕님 스파2에 도입하기도 했었는데 저 역시 또 다시 오락실 수준의 완성판을 만들었지만 어느날 하드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싹 날려버렸습니다. 지금 고전게임들을 대부분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이 스파2는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요즘 인터넷에 도는건 게임 퀄리티가 영 아니더군요. 슈패에뮬(zsnes)로 슈패판을 하는게 그 시절 느낌을 되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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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버튼을 돌려 금색가루에 그림을 그리다 뒤집어 흔들면 지울 수 있는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만화책 그림을 따라 그리는걸 좋아했던 저는.. 이 시절 컴퓨터 잡지 마이컴에 연재되던 디럭스페인트2(2D그래픽툴) 강좌를 흥미있게 봤었죠.

도스시절이라 보급되지 않았던 마우스를 구입후 그림을 그려보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도화지, 물감 필요없이 마음것 그리고 지울 수 있는게.. XT 허큘리스에서 닥터할로 프로그램으로 그림을 그려본적이 있었지만 칼라모니터 + VGA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는건 차원이 달랐습니다. 마우스가 신기해서 어린애처럼 색칠공부 프로그램을 카피해온뒤 색칠공부도 하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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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http://kr.blog.yahoo.com/seojun1472/4133

마이컴은 구독자들의 그래픽 작품중 하나를 선정해 매달 잡지표지로 사용하고, 컴퓨터그래픽스 대전의 작품들을 매년 소개했었는데 이런걸 보며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를 꿈꿨었죠. 3D스튜디오, 디럭스페인트2를 이용한 320x240 ~ 1024x768 해상도의 많은 작품을 봤었는데 1024x768은 완전 실사같더군요. 1024x768은 당시엔 정말 까마득해보이는 꿈의 해상도였고.. 이렇게 금방 1024x768 해상도에서 게임을 하게 될거라곤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몇달뒤 시작한 pc통신의 게임동호회에서 오락실의 스파2 해상도가 겨우 384x224라는 사실을 알았었기 때문이죠. 이때 처음으로 오락실 게임의 해상도는 왜 그렇게 낮은데도 pc게임처럼 도트가 안보이고 훨씬 더 좋아보이는지 의아했던 생각이 납니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브라운관과 모니터의 차이 TV와(오락실 브라운관도 이 방식) 모니터의 영상처리방식의 차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 drzekil 님이 정확히 알려주셔서 수정했습니다)

(관련글) 오락실 게임 에뮬레이터 MAME.. 오락실 화면처럼 즐겨봅시다!! 옵션 완전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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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럭스페인트2 강좌를 통해 그라데이션, Anti-Aliasing 같은 개념도 배우고 툴 사용법을 익혔지만.. 그림에 특별한 소질이 있는것도 아니고 미술 학원도 안다닌 저는 이런 수준의 그림을 그리고 놀았습니다. 애니메이션이 가능한 디럭스페인트 애니메이터라는 프로그램이 나와서.. 스파2나 용호의권의 격투장면을 뼈다귀 인간으로 애니메이션화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참 재밌어 했죠. 호기심 많은 중딩이었던 만큼 야한것도 그리고.. 몇년전 유행한 졸라맨 플래쉬를 떠올리면 됩니다 ㅋ

교과서 한장 한장 그림을 그려 후루룩 넘기면 애니메이션이 되는 장난을 좋아했던 저는 학교에서 스파2를 그렇게 만들어 친구들한테 보여주면 인기가 정말 많았었는데.. 컴퓨터에선 대형 화면에 색깔까지 입힐 수 있고 훨~씬 자유롭게 만들 수 있으니 제겐 정말 최고의 장난감이었죠. 장면 한장 한장을 프레임이라 부른다는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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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사운드 (녹음 출처 01411.net)

어느날인가 그간 무심코 보던 잡지의 PC통신 관련 기사들이 눈에 들어오고.. PC통신을 하면 게임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파2가 PC통신으로 배포된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아 용산에서 2400BPS MNP 모뎀을 구입한뒤 이야기 프로그램으로 PC통신을 하게 되었죠.

내키는대로 접속한 pc-serve(천리안)에 가입해 영어, 숫자만 가능한 id를 만드는데 apple, guile, ryu 등 아는 단어들을 모조리 쳐봤지만 전부 존재하는 id더군요. 전화요금이 계속 실시간으로 올라간다는 생각에 참 초조하고.. 그래서 아무렇게나 쳐서 id를 만들었습니다. 만들고나니 제 분신인듯 참 애착이 가더라고요. pc통신에서 알게된 동갑부터 대학생 형 누나.. 먼 지역 사람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id를 수첩에 써서 관리하면서 pc통신의 신비함에 감탄하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중3일땐 채팅으로 알았던 경남 밀양의 대학생 형하고 진짜 친했었는데.. 그 형이 2HD디스켓 10장이나 되는 야게임도 공짜로 소포로 보내주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이죠. 여동생이 아닌 저같은 남동생한테.. 친동생보다 더 잘 해줬는데 그게 그당시 pc통신의 일반적인 분위기였습니다. 그 형님과 어떻게 연락이 끊겼는지는 기억이 전혀 안나는게 참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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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은 01410번호 , 나우누리 서비스 , 19200bps 속도가 없던 시절

이땐 01410 같은 할인되는 통합번호가 없던 시절이었죠. 불법복제 단속의 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기대했던 상용게임들은 공개자료실에서 다 지워지고 쉐어웨어, 데모만 있었는데.. 몇몇 동호회 자료실을 잘 찾아보면 상용게임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이 전화선을 타고 컴퓨터로 들어오는게 정말 신기했죠. 제 모뎀은 MNP압축기능이 있는 2400BPS모델로 속도가 9600BPS까지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고 광고했었지만 효용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텍스트 파일만 효과가 있었죠.

2400BPS면 1메가 받는데 대략 1~2시간 정도 걸렸던것 같은데 시간도 시간이지만 전화요금의 압박도 장난아니었죠. 조금이라도 속도를 빠르게 하기위한 각종 속도최적화 명령어들이 퍼졌었는데 지금 생각나는건 ATDT밖에 없네요. 전화요금을 줄이기 위해 pc통신 프로그램엔 화면상에 보이는 모든 텍스트를 텍스트 파일로 저장하는 갈무리 기능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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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시 이어받기가 안돼서 50분간 받던 자료를 처음부터 다시 받은적도 있었죠(아버지가 수화기를 드셔셔) 이후에 이어받기나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진 5.3 , 6.1버전이 나왔지만 많이 불안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어받기가 제대로 작동이 안되고.. 멀티태스킹을 하면 툭하면 다운이 멈추거나 에러나곤 했었습니다. 도스시절 너무 불안했던 기억 때문에 윈도우95 시대가 되서도 다운로드중 무리한 웹서핑이나.. 멀티태스킹.. 이어받기는 피했었죠. 지금도 이어받기는 웬지 불안합니다 ㅋ

PC통신은 전화요금과 더불어 또 다른 골치거리가 있었으니 통신중엔 전화를 받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것이었죠. 수화기를 들면 수화기에선 기분나쁜 소리가 들리고 PC통신은 끊겼습니다. 집 전화도 항상 통화중인 상태가 되니 2000년 ADSL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가족들의 눈치밥을 먹으면서 pc통신을 해야 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들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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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했던 하이텔의 인터페이스(x,p,z,t.....)

PC통신을 하면서 처음엔 다운로드가 제일 좋았지만.. 나중엔 채팅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이텔의 만원 정액제와는 달리 천리안은 쓰는대로 요금이 불어났는데.. 처음 가입한게 천리안이었고 인터페이스가 편하다는 이유로 천리안에 정착했었죠. 하이텔은 동호회가 참 다양하고 좋았지만 인터페이스가 복잡했습니다. 천리안 채팅방에서 여자와 연속 17시간 채팅.. 아는 형, 누나들하고 매일 새벽까지 채팅하느라 두 세달동안 전화요금 + 천리안 요금 = 10~15만원 가까이 나온적도 있었죠. 이 시절 매일 밤 부모님 몰래 천리안에 접속하느라 컴퓨터에 이불 뒤집어씌우고 소리안나게 접속하고... 불끄고 채팅하고..

이걸 메꾸느라 정품게임을 다 팔았어도 채팅에서 빠져나올수 없었습니다. 93년엔 부분 정액제인 6000원? 천리안 팝 요금제가 생겨 원없이 채팅을 즐길 수 있었죠. 천리안에서 사귄 친구들의 하이텔ID를 빌려서 사용하기도 하고.. 이 친구들중 한명은 나중에 제가 PC통신을 끊었을때도 제게 손 편지까지 했었는데 답장을 못보내 연락이 끊긴게 지금도 정말 미안하네요. 우리 사회도 그렇고 당시 주변에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너무 줘서 공부못하면 인간이 아닌것 같아.. 컴퓨터, pc통신 다 끊어버리고 절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고딩생활을 맞이했기에 이 친구의 우정까지 매몰차게 대했던것 같아 후회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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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존재하지 않던 네티즌이라는 단어.. 지금 이 소리만 들으면 왜이리 부정적으로만 들리는지..

이 시절 온라인은 ID가 자신의 얼굴인것처럼 현실보다 더 조심스럽고 훈훈했습니다. 이 시절에도 각 대학의 익명게시판(익게)에 들어가면 대학 서열을 쫙 나눠가며 사람을 평가하는등 인간의 악한 본능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이건 몇몇 대학교 익게에만 한정된 일이었고.. 지금 인터넷처럼 까칠까칠하고 트집잡고 태클걸고 못잡아먹는 메마른 공간이 아니었죠.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운영한다면 이 메마른 분위기는 좀 해결될것 같은데 이는 불가능하죠.

이 시절 채팅이나 동호회를 너무 질리게 즐겨서인지.. ADSL이 보급되고 인터넷 시대가 되고 나서는 온라인에 완전히 흥미가 사라졌네요. 블로그가 유일한 재미.. 가끔 아는 사람끼리 채팅을 하다보면 나도 옛날엔 저렇게 채팅용어나 이모티콘을 써가면서 참 재밌게 놀았는데.. 지금은 왜 이리 온라인의 그 가식적인 대화가 싫고 재미없지.. 이런 늙은이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만 유별난게 아니라 지금 인터넷을 즐기는 사람들도 얼마뒤에는 다 같은 과정을 거치리라 생각됩니다.

동호회 대문에 쓰이던 안시(ANSI)를 배워 멋들어진 애니메이션이나 그림그리는법도 배우고.. PC통신에 대한 추억은 정말 많지만 이 포스트에서 다 다룰수가 없네요. 스샷을 어떻게 찍어야 고민했는데 01411.net 덕분에 찍을 수 있었습니다...

(16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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